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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낭비
방소영
감정낭비
작품설명
작품명 감정낭비
출판년도 2021
설명
감정낭비


저녁을 걷고 있는데 갓길 제라늄이 하느작거린다
이루지 못한 것 아쉬워한 적 있다
꽃은 항상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지
여기저기 핀 꽃줄기에 매단 자괴,
나는 이 소비된 느낌을 어찌 보상 받아야 하나

향기도 연습할수록 눈빛에 튼튼해지고
감정은 많이 쓸수록 더 깊고 단단해지는데
힘의 균형, 언제 어떻게 주고 뺄지를
제라늄은 알고 있는지

한 계절을 산다는 것
갈까 말까 망설일 때면 가는 것이
할까 말까 머뭇거릴 때면 하는 것이
여한이 없을 것 같아

간혹 부는 바람에도
쫓기듯 부르르 떨면서 끝내 잎을 내주는 순간들
뿌리의 에너지는 소진되고
심신이 지치면 임계를 넘긴 낭비

투자대비 효율이 없는 生을 사는 것 같아
측백나무 그늘이 흔들린다
안간힘으로 뻗어 오르는
더 사랑해야할 모든 것은
저 꽃봉오리

유쾌한 것도 슬픈 것도 지나가버리는 한때
잎들은 조용히 흔들리는데
오늘, 내일, 다시는 오지 않을 위대한 지금을
제라늄은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바람이 불면
지치고 힘들어 미간이 찌푸려질지라도
자신의 얼굴에 책임지라는 말이 있듯
다 내려놓으려는 이곳에서
나는, 다시 쪼그린 무릎에 두 손 얹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
.


경매된 남향


위층, 새롭게 단장하는 중인지
소음이 조달하는 진동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내부의 해체는 쉽게 이루어졌다
멍한 눈빛은 터널이나 동굴만이 아니다
옆구리에 강아지 낀 채 고개 떨군 그의 그늘이
누군가의 설레는 기대로 환치되려는지
요란한 보수를 치러내고 있다

종일, 해가 아파트를 넘기듯
집도 우울로 넘어갔을까
거기서 기다리는 건 시리도록 아픈 침체의 건수를
상승의 기회로 삼는 또 다른 사람의 것

슬픔이 활성화된다면
이 세상의 빈부는 기쁨과 대조될까
조화가 불러 세우는 대조일까

한밤 중 불 꺼진 아파트 창문도
부재가 낙찰해간 처분이다
어둠은 가진 자의 그늘이라고
불량한 별들은 늘 주위를 맴돈다

호시탐탐 노리는 입주자의 입꼬리 수위에 이별은 조정된다

농수산물 새벽 두 시의 웅얼거림처럼
위층은 아직도 외계어에 몰두하고 있다
알 수 없는 저 수신호,
로얄층 남향에 햇볕도 치열하다

다 잘될 거예요, 힘 내세요
희망도 재테크일 수 있다고
트럭 뒤에서 제라늄 화분을 실어주었다


.
.

공감


새벽이 촘촘히 엮인 길을 걸으면
갓길 거미줄에서
이슬이 흔들린다
걷다보면 어둠도 빛에게
자리를 건네는 거지
밤과 낮이 섞인 잿빛이
그렇게 맞물리는 사이

텃밭 그물에 걸린 새끼 고라니가 버둥대고 있다
두 앞발이 낀 채로 밤을 지샜을까
흙탕물 뒤집어쓴 까만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린다

배낭에서 꺼낸 커터칼로 그물 한 올씩 잘라주었다
흔드는 머리에서 꼬리까지 이어져 튀는
안도감일까, 고라니는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내 눈빛과 고라니 눈빛이 마주친 그때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배냇저고리 속을 들여다보던 눈빛
수줍게 머리카락 쓸어 넘기며 건넸던 첫 감정
끝내 손을 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몰아쉬던 숨

너를 처음 만났지만 기분이 좋아
잘 살아야 해, 가만히 읊조리는데
알아듣는 듯 따뜻한 느낌이
여운으로 밝아온다

공감은 함께 느끼며 깊게 반응하는 거지
서로 손을 내밀며 마음을 얹는 일이야
지붕 위 새하얗게 흩날리는
고향 굴뚝 연기 그리워지는 날이다

고라니는 마지막이라는 듯
저편으로 고개를 젓더니 이내 숲으로 사라졌다
아침 해가 밭고랑에 안개를 대고
걸어갈 길이 분주하게 모퉁이를 돌아나간다

걷고 또 걷고 설레기만 한데
누구를 만나든
그 눈빛이 기대되는
오늘
작품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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